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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의 무덤 위에서 바다와 제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고? –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바다사랑 제주사랑 문예제’에 부쳐
|| 본 글은 2018-10-13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NIGAGARA HAWAII (니가가라 하와이).’
2016년 한 단체에서 주최한 ‘제1회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에 숨겨진 메시지였다. ‘To the Promised Land(약속의 땅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International leader, Seung Man Rhee (세계적인 지도자, 이승만) / Greatness, you strived for (위대하도다, 당신의 분투로) / A democratic state was your legacy (민주 국가라는 유산을 남겼으니)’로 시작하며 일견 공모전의 취지에 부합하는 이승만 찬양시인 듯 보여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각 행의 첫 글자를 따서 세로로 읽으면 ‘NIGAGARA HAWAII (니가가라 하와이)’라는 숨은 문장이 드러났다.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하와이로 떠난 사실을 빗댄 풍자로 읽힐 수 있는 문장이었다. 비슷하게 첫 글자에 ‘한반도 분열 / 친일인사 고용 민족 반역자 / 한강 다리 폭파..’ 등의 문장이 숨어있었던 입상작 ‘우남찬가’와 함께 해당 작품은 시상식까지 모두 끝난 상태에서 뒤늦게 입상취소가 되는 해프닝을 만들어냈다.
10일~14일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의 부대행사로 13일 토요일에 문예제가 열린다고 한다. 전국 초‧중학생 및 해당 연령대의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문예제의 주제는 ‘바다사랑 제주사랑’이다. 어떤 바다에 대한 사랑을 글에 담기를 원한 것일까. 아마도 다양한 해양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바다는 아닐 것이다. 구럼비를 부수고,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제주새뱅이를 죽이고 쫓아내어 그 무덤 위에 지어진 해군기지에서 벌어지는 잔치에서 감히 생명의 바다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떤 제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한 것일까. 아마 폭력에 저항하고 평화를 실현하고자 갈망하던 이들이 열심히 만들어오던 평화의 섬 제주는 아닐 것이다. 아직 치유되지 못한 4.3 국가폭력, 11년 째 이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국가폭력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강정에서 벌어지는 잔치에서 감히 평화의 제주를 말할 수는 없다. 결국 국제관함식을 통해 전 세계에 홍보하고자 하는 바다와 제주는 과정이야 어쨌든 해군기지가 자랑스럽게 들어선 바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태평양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제주다.
이번 국제관함식의 목표는 전 세계를 향해 제주가 국제적 군사기지로 거듭났음을 거하게 공표하는 데 있을 뿐이다. 11일 관함식에 참가해 해상사열을 받던 대통령이 “평화와 번영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게 강한 국방력이며, 그중에서도 해군력은 개방·통상 국가의 국력을 상징한다”고 말한 점에서도 그 취지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해군기지가 들어선 제주가 ‘평화의 거점’이 될 것이고, 국제관함식이 ‘세계의 평화·화합을 도모하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평화가 군사안보로 지켜질 것이고 군대는 자국 영토와 국민을 지킨다는 군사주의적 신화를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군대의 본질은 ‘지키는 것’을 넘어서 ‘침략’에 있다. 국방을 책임진다는 한국군은 평화나 재건 따위의 이름으로, 하지만 사실은 ‘국익’과 정치적 이해관계 계산에 따라,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미군기지에 맞서 삶의 터전과 생명, 평화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평택 대추리와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자신들이 지켜야 할 대상이어야 마땅할 그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벌여왔는가. 평화는 결코 무기를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제주는 거대한 국가폭력이 남긴 상흔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땅이자, 국가폭력에 대항하여 평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분투가 여전히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것은 그 노력과 생명들을 짓밟고 세워진 해군기지가 아니라 바로 그 국가폭력에 맞서는 평화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들을 견고한 차벽 뒤로 숨긴 채 학생‧어린이‧청소년들을 불러 모아 호국문예제가 열린다. 해군본부의 요청으로 제주도 교육청에서는 각 급 학교에 교직원과 학생 참가 협조 공문까지 보냈다고 하니, 가히 동원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평화를 지킨다는 바로 그 군대에 의해 깨어지고 짓밟힌 강정에서, 여전히 그 불법과 폭력에 저항하며 생명과 평화를 외치는 이들의 목을 무력으로 옥죈 채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그 자리에서 어떤 제주사랑과 어떤 바다사랑이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인가. 통렬하게 ‘니가가라 하와이’를 외치는 작품이 한 편쯤 나와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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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이 결국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병원에 들이닥친 경검찰은, 기어이 시신을 빼앗아 부검을 하고야 말겠다는 기세다. 이미 부검에 반대한다고 명확히 입장을 표명한 유족을 두고 법원은 '유족과의 협의' 하에 부검을 하라고 영장을 발부하며 결국 사법정의 수호 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 정부는 이미 억울하게 가신 분을 돌아가신 후에까지 능멸해서라도, 비록 그것이 눈 감고 아웅하는 일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사인이 물대포가 아니라고, 국가폭력이 아니라고 악다구니를 쓰고싶은 모양이다. 시민들이 바닥에서 밤을 새며 존엄한 생명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토록이나 저열하고 파렴치한 권력의 행태를 참을 수 없어서, 하지만 너무 멀리 있어서 그 자리에 단 하룻밤 함께 하는 것조차 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파서, 미친듯이 소식이 올라오는 소셜미디어 타임라인만 며칠째 멍하니 주시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어제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차곡차곡 쌓였던 갈 곳 없는 분노가 터져나왔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읊었는데도 끝이 없더라.
백남기 농민과 국가폭력,
최순실과 미르/k재단 비리,
독재 시대로 돌아간 것만 같은 정권,
사드배치,
돈 10억엔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넘긴 정부,
7년 넘게 싸우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세계 최대 원전 밀집국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노후원전 수명을 2번째로 연장하겠다고 설치는 한전/한수원,
최근 지진으로 드러난 무능한 국가재난관리시스템,
2년 넘게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 미수습자들, 그리고 며칠 전 뜬 침몰 원인 규명 장치인 스테빌라이저가 아무도 모르게 이미 절단됐다는 기사,
회생불가능해 보이는 4대강과 세금 30조,
ktx 해고승무원과, 인천/김포공항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권력 찌라시로 전락한 주요 언론,
세금 수백억 써서 만들어놓고 한 번 달리지도 못하고 철거한다는 월미도 레일,
출구 없는 입시전쟁,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OECD 국가 중 늘 뒤에서 선두를 다투는: 자살율; 임금을 포함해서 정치경제사회적 지위에 관한 젠더 격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역차별' 같은 주장이 성행할 수 있는 나라); 공공부문 국민 신뢰도; 부패지수; 소득재분배 정책; 유리 천장 지수; GDP 대비 복지예산 비율; 근로시간; 평균 수면시간; 국민행복지수; 아동 삶의 만족도 및 행복지수; 노조비율; 노인빈곤율/자살율...
읊다 읊다 지쳐서 잠들 이름.. 이 아니라 문제들이여..
당장 내 앞가림도 급급한 주제에, 바다 건너 불구경 하고있는 주제에 내가 분노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는 무력한 성찰을 해 보지만
치솟아오르는 분노와 답답하기만 한 가슴은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이런거 쓰면 잡혀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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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을/만 장식하는 블로깅
이 블로그의 첫 게시물은 2014년 8월 26일, 뉴욕으로 떠나오기 전 송별회들을 갈무리 한 글이다. 다시 보니 새삼 그립고 고마운 사람들. 이틀 뒤인 28일에 뉴욕에 도착, 지금이 2016년 9월이니 어느새 2년 하고도 한 달여가 지났다. 글은 써야 는다기에 어떻게든 글이 쌓이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야심차게 시작한 블로그인데 시작과 끝ㅡ일단은ㅡ만 장식하는 꼴이 되었다. 그다지 놀랍지는 않지만 부끄럽기는 하다.
2년이라는 시간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6개월의 인턴쉽을 마치고, 뉴욕 빠꿈이가 되기에 충분히 긴 기간이었다. 닥치면 다 한다는게 내 지론 중 하나지만, 막상 뒤돌아보니 어떻게 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한 시간들.
View from the rooftop of the new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in the Meatpacking District, 16 Sep 2016
때로는 넘치게, 때로는 헐렁하게 채워진 하루 하루가 쌓여 시간은 착실하게 흘렀고 어느덧 내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은 한 챕터가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혹은 내 게으름의 결과로, 맞이하게 된 과도기. 아주 금방 뉴욕을 떠날 수도, 머무르게 될 수도 있는 애매한 시기. Everything is up in the air.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혼재된 시간. 이 곳에서 새롭게 얻은 성취와 발전에 감사하며 내 앞에 펼쳐진 기회에 두근두근 하다가도 동시에 뼈저리게 깨닫고 만 나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라 급격히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이 반복되는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새삼 깨달은 나의 부족함이 말하기/(듣기)/쓰기라는 건 조금 치명적이다. 온 지 겨우 2년인데, 한국말을 조리있게 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느낌적 느낌이 있고 쓰기 역시 지금 해 보니 못 하겠다. 띄어쓰기마저 너무 헷갈린다. 온 지 2년이나 됐는데, 그리고 그 기간동안 한 게 본격 영어로 말하고 듣고 글쓰기 훈련인데 자신감은 되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낮아진 것 같다. 특히 job application을 쓰며 현재 진행형으로 추락중이다. 사실 이게 극복(?)이 가능할지, 어떻게 해야 만족할 만큼 발전할 수 있을지 요즘 느낌 같아서는 감도 안 잡힌다.
Job search와 research proposal에 본격적(!)으로 올인하는 생활은 CSF 인턴쉽이 끝난 이후로 10일 째. 이렇게 날짜를 세어 보니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닌데, 나는 역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 (aka '잉여'의 상태)를 어지간히 못 견디는 것 같다. 뭐, 자금의 압박도 있고. 한국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의도치 않은 배수진의 압박도 있고.
학교 도서관과 함께 내 주 서식지가 되고 있는 NYPL @5th av.
10월 5일에 재개방하는 Rose Main Reading Room과 생각지도 못했던 book train도 보고 갈(?) 수 있게 생겼다.
한 가지 재미있는 깨달음은, research proposal을 쓰는데 막연하게 더 공부할 생각을 하면 끝없이 막막하다가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쓰기 시작하면 엄청 재미있다는거다. 이제야 겨우 '내 주제'의 윤곽이 어렴풋이 잡히는 것 같은, 미약하지만 매혹적인 감이 온다. 그렇다고 그 주제에 대해 제대로 뭘 안다는 건 아니다. 이건 이 쯤 되면 겸양이라는 미덕이 아니라 좀 문제인 것도 같다.
그래도 직업이든 공부든 지원 범위를 (아직까지는) 꽤나 협소하게 잡고 있다는 건 절박함이 덜해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강해져서일까.
너무 조급해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그래도 현실적 조건이 있으니 최대한 빨리 결정이 나도록 해야한다.
-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 아침에 일어나서 5분 명상하기.
- 일단 방에서 나가기.
- 마감 지키기. 인생의 목표다.
- 매일 저녁 번역에 일정 시간을 할애하기.
- 아주 짧게라도 일주일에 한 편 글 쓰기.
- 꾸준히 운동하기.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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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 지향 (0) | 2015.0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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