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우리들의 목소리 –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1주기에 즈음하여

|| 본 글은  2017-05-29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존재 자체로 위협을 받는 사람들

지난 17일 수요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일 년 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한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다시 포스트잇을 들었다. 같은 날 새벽 청주의 어느 화장실에서는 성폭행을 하려는 남성에게 구타당하던 한 여성이 겨우 도망쳐서 살아남았다. 그 전날인 16일 대한민국 군 검찰은 한 동성애자 남성 육군대위에게 ‘군형법 92조의6’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구형했고, 일주일 후인 24일 군사법원은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해당 판결이 난 24일, 한 여성 해군장교는 직속상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불과 며칠 동안 일어난 이 사건들에는, 각각 명백한 대상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각각의 차별과 폭력은 그 뿌리가 깊이 뒤얽혀서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인근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을 살해한 남성은 “내가 여성들로부터 여러 피해를 당했”고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해서” 죽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사건이 조현병 환자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묻지마 살인’이라고 결론지었다. 여성혐오(misogyny)에 의한 여성살해(femicide) 사건을 마주한 국가 권력의 선택은, 여성이라는 특정 사회집단에 대한 차별, 혐오, 폭력을 인정하고 해결책을 도모하는 대신 또다른 사회적 약자 집단인 정신질환자에 대한 차별, 혐오, 폭력으로 덮는 것이었다.

 

 

강남역 10번출구 살인사건 1주기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희생자를 추모하며, 서로의 고통에 공명하며 사람들은 다시 포스트잇을 들었다.

 

‘군형법 92조의6’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육군 대위는 사적 공간에서 업무상 관련 없는 상대와 합의된 성관계를 가졌다. 이 상황에서 유죄 판결의 유일한 증거는 상대가 동성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판결은 명백하게 국가가 저지른 성소수자 혐오 사건이다. 만약 그가 이성애자였다면 그는 처벌받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군 검찰이 해당 대위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던 5월 16일의 다음날인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이었고,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은 그는 법정에서 쇼크를 받고 쓰러지며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가 쓰러지던 날 옆 동네 대만에서는 동성혼이 법제화되었다.

 

당신의 평화는 우리들의 강요당한 침묵으로 가능한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아남았음에 안도해야 하는 사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민낯이다. 이 사회는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연령, 장애, 경제적 계급, 사회적 신분, 혼인여부, 출신국가, 인종, 종교, 용모 등의 신체조건, 병역 등 수많은 기준을 만들어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고 집단을 나누어 차등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 수많은 기준들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 ‘미성년’자에게는 일상이 전쟁이고, 매일 매일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다.

 

누군가는 ‘나는 이 사회에 그런 정도의 차별과 혐오가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지금까지 누려온 자신의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고자 한다. 강남역에 모여 살해당한 여성을 추모하고 서로의 고통에 공명하는 여성들 앞에서 “남성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남성도 군대 가서 죽고 일하다 죽는 사회적 약자”라고, “남자 여자 싸우지 말고 화해하자”고 소리높여 외치는 사람들이 그렇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나중에”를 외친 대선후보와 그를 함께 연호한 이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들도 어떤 기준 하나쯤에는 반드시 차별 혹은 혐오의 대상으로 걸려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못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못했기 때문에,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에 부합하지 않/못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지금까지 누려온 ‘평화’는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의 입을 막고 존재를 지움으로써 유지되는, 일상이 된 권력이었다.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81)가 이미 30년도 전에 일찍이 외쳤던 것처럼, “당신의 평안은 나의 침묵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 분석이 2017년에도 유효할 줄 그녀는 알았을까.

 

직관적이고 간결한 이미지와 메시지의 결합을 통해 성차별적 이데올로기(sexism)에 저항하는 작품들로 유명 유명한 바바라 크루거의 포스터. 혐오와 차별의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야 터져나온 목소리들로 인해 세상은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보스몹 한 마리 잡아서 깔끔하게 끝나는 일이면 참 좋겠는데, 이토록 촘촘하게 우리 모두를 옭아맨 차별과 혐오는 그렇게 쉬이 답안지를 내어주지 않는다. 2017년 3월 10일 ‘보스몹’ 박근혜를 끌어내렸다고 이 사회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이. 이 사회 구석 구석 다양한 측면과 층위에서 작동하는 차별과 혐오의 정치는, 지금껏 주류 사회가 그래왔던 것처럼 ‘그런 차별과 혐오는 없다’고 ‘평화’를 가장하거나, ‘분열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평화’를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 수많은 차별과 혐오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에 사회 전체가 민감해질 때에야 비로소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힘의 논리, 위계질서, 지배, 통제와 복종, 우월성, 획일성 등의 군사주의적 가치와 태도를 뿌리깊이 내면화한 사회에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실현하려면 폭력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평화가 가장 요구되고 강조되는 때는 평화로울 때가 아니라 평화가 부재할 때, 즉 폭력이 발생할 때이기 때문이다. 폭력에 민감해지는 감각을 기르는 것, 현상 뒤에 가려진 폭력의 맨얼굴을 읽어내고 긴밀하게 그러나 교묘하게 연결된 폭력들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 분석력을 기르는 것, 그럼으로써 누군가에게 가해진 폭력이 결코 나와 무관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다른 목소리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에 평화의 문화를 단단히 뿌리내리고 더 많은 이들에게 정의로운 방향으로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건 그런 것이다.

 

“(억압받아온 여성,) 이들의 목소리가 가시화되면 여성의 복종으로 성립되어온 가부장제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정희진의 말처럼,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온 이들이 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질수록 그들의 강요당한 침묵으로 유지되어 온 부정의한 사회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꽤나 오래 전부터 목이 터져라 소리질러왔지만, 이제야 겨우,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여성징병제는 과연 ‘평등’을 가져올 수 있을까?

|| 본 글은 2017-09-25 전쟁없는세상 블로그허프포스트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남성 활동가 바꿔주세요.” 한국 병역거부 운동 초기였던 2000년대 초반, 사무실에서 여성 활동가가 전화를 받으면 거의 틀림없이 나오는 반응이었다. “어디 군대도 안 다녀온 여자가,” 라는 말은 그로부터 15년도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징병제, 군인권, 군사주의, 무기거래, 방산비리 등 군대나 국방과 관련된 주제에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그런 반응들이 유난히 지긋지긋한 순간이면 ‘차라리 여성 징병제면 내가 병역거부 하고 이 소리 안듣고 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물론 한국에서 병역거부는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건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군필 남성과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발언권과 시민권을 얻고 싶다는 욕망의 발로일 거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여성에게도 병역을 통한 국방의무를 부과하자는 주장이 청와대 온라인 청원게시판에 올라왔다. 지난 14일 종료될 때까지 보름 여의 기간 동안 123,204명의 추천을 받았고, 1만여 개가 훌쩍 넘는 청원들 중에서 베스트청원 2위를 차지했다.

 

지난 8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코너에 등록된 ‘여성 징병제’ 주장 청원은123,204명의 참여 인원을 기록하며 9월 14일 종료되었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여성 징병으로 실현하는 “남녀평등”?!?

해당 청원은 주장의 근거로 ‘저출산으로 인한 병역 자원의 부족,’ ‘군 가산점 등 군필 남성에 대한 보상 혜택이 부족한 상태에서 “독박 국방의무”로 인해 발생하는 남녀 불평등’ 문제를 들고 있다. 주장의 내용이나 근거의 논리성 및 합리성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짚어주신 친절한 글들이 이미 여러 개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해당 청원 중심이 아닌 ‘여성 징병제’와 ‘성평등’을 중심으로 생각을 간략히 정리해보려 한다.

 

사실 여성의 군대 복무는 1980년대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를 비롯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앞세웠던 주장이기도 하다. 여성의 시민권과 사회적 발언권 획득을 위한 전략을 고민한 결과이자, 더 나아가 여성의 군대 참여를 통해 군대와 사회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성 및 위계가 희석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주장이었다. 한국에서도2000년대 초반 비슷한 맥락으로 여성 징병제나 여성의 군대 참여가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논의되기도 했다. 여성의 군대 참여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의 맥락은 다르지만 결론적으로는 여성이 군대를 감으로써 (남성이 “독박 국방의무”에서 벗어나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과 발언권을 얻든)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여성이 군대를 가면 “남녀평등”이 이루어질까? 다시 말하면, 여성이 군대를 다녀 온다고 해서 군필 남성들의 그것과 같은 시민권과 발언권이 여성에게도 생길까? 혹은 군대를 가는 남성들의 21개월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 ‘성평등’에 도달하게 될까?

 

“명예남성”과 “군대의 꽃” 사이

군대 내에서 여성군인들은 많은 경우 ‘명예남성’과 ‘군대의 꽃’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한다. 군인권센터에서 여군 인권 담당 간사로 일하고 있는 방혜린 활동가는 원래 해군 대위였으나 군 내부의 성차별적 문화와 반인권적 위계에 한계를 느끼고 제대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군 시절의 자신을 남성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성적 시각에 길든 명예남성”임과 동시에 “필요할 때에는 꽃처럼 피어있”기를 강요받았던 존재로 기억한다.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의 이미지 때문에 군대를 선택하고 노력 끝에 입대한 한 여성 군인은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 전체 구보 훈련을 할 때 ‘여자보다 뒤쳐질거냐’며 남성 군인들을 자극하고 사기를 높이는 데 이용되는 대상 이상이 되지 못함을 경험하고 좌절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17년 한국 최초의 여성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된 피우진씨가 대위 시절 ‘술자리에 여성군인을 보내라’는 군 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고민 끝에 전투복을 입고 가도록 조치한 일로 ‘미운털’이 박혀 보직 해임을 당했던 일은 유명하다. 혹시 징병 등의 수단을 통해 여성 군인의 수가 많아지면 이러한 현상이 약화될까?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징병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여성군인은 주로 “전통적으로 여성화” 되었다고 여겨지는 비서, 교관, 간호사, 행정직 등에 배치되고 “남성 군인들에게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전투하는 여성 군인’ 이미지는 이스라엘 군 당국의 홍보용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여성 군인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인식되는 업무를 군대 내에서 요구받는다 . 출처: commons.wikimedia.org

 

‘남자 못지 않은’ 군인이기를 요구받는 동시에 여전히 ‘여성’으로서의 성적 대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 군인들에게 성차별과 성폭력은 일상이다. 지난 5월에는 남성 상관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 해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했고, 9월 초에는 남성 해군 장교 두 명이 부하 여성 군인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7년만에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여성 군인들에 대한 성범죄 문제는 이스라엘 징병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수십 년째 끊이지 않고 있는데, 가장 최근인 2016년 조사에서는 여섯 명 중 한 명 꼴로 성희롱 및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2006년 영국 국방부는 여성 군인 일곱 명 중 한 명이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50퍼센트가 군대 내 성희롱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남성 군인은 대부분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으로도 군대 내 여성 군인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지만, 그와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신고조차 이루어지지 못하는 수면 아래의 피해들이다. 군인권센터의 방혜린 활동가는 해군 시절 아래 계급의 남성 부사관에게 성희롱과 성폭행을 당했지만 피해 여성 군인에게 오히려 ‘조심하라’고 교육을 시키는 군대라는 공간에서는 신고가 의미가 없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해군 여성 군인이 남성 상관 두 명에게 당한 성폭행 피해를 고소하는데 7년이나 걸린 이유는 성폭행을 당한 후 피해 사실을 처음 신고한 지휘관에게 오히려 또 성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군대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해왔다. 미국 보훈부(Department of Veteran Affairs, VA) 연구에 따르면 절대 다수의 미국 여성 군인들이 복무 중 강간(30%), 성폭행(71%), 성희롱(90%) 등의 성폭력을 당하지만 사건의 90퍼센트 정도는 신고되지도 못하고 있다.

 

이처럼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군대 문화와 제도 속에서 여성 군인은 그 견고한 벽에 균열을 내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바람직한 군인상’으로 여겨지는 남성성을 획득하고자 노력하는 개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요되는 ‘여성’의 성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되기 쉽다. 그것이 군대가 남성중심적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여성’을 ‘용인’하는 수준이다. 군대 밖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현실의 장벽은 너무나 견고해서, 여성이 군대를 감으로써 여성이 군필남성과 같은 시민권을 얻거나 군대가 조금 덜 남성 중심적인 공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가깝다.

 

기계적 평등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실질적 평등을

그렇다고 해도 계속 남자만 ‘독박(?)’ 쓰는건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최근 몇몇 북유럽 국가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성징병제 논의를 얼핏 보면, 남성이 징집 대상이라면 여성 역시 징집이 되는 것이 ‘평등’을 위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 ‘선진국’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는 노르웨이가 2016년부터, 네덜란드와 스웨덴이 2018년부터 징집 대상에 여성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인용하기 위해서는 한국과는 매우 다른 사회문화경제적 배경과 도입 맥락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징병 대상에 여성을 포함시키는 결정은 전 세계적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가는 흐름과 아주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고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군사주의의 확장 가능성이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는 아니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할 지점은, 언급된 세 북유럽 국가에서 여성 징병이 결정된 배경에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이라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남성만 징병되는 것이 남성에 대한 차별이기 때문에 여성도 징병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도가 여성을 배제시킴으로써 성차별의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에 군대를 포함한 사회의 전 영역에서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한 권리와 의무,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징병 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한다는 논리다. 여성이 군대를 가는 것이 남성과의 ‘동등한 대우’로 여겨지는 이러한 논리가 가능한 것은 군대 이외의 사회 영역 전반에서의 성별격차가 실제로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에서 매년 발표하는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 GGI)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144개국 중 노르웨이는 세 번째, 스웨덴은 네 번째, 네덜란드는 열여섯 번째로 성 격차가 없는, 즉 성평등에 가까운 국가이다. 참고로 한국은 116위로 조사대상국 중 성 격차가 가장 큰 하위 20퍼센트에 포함되어 있다.

 

2016 성평등 지수 국가별 순위. 자료: 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6.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는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보장되는 국가로, 각각 1922년, 1902년, 1922년부터 다양한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할 권리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여성의 군대 참여가 실질적 ‘성평등’을 위한 조치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모두에게 덜 폭력적이고 덜 차별적이며 덜 군사주의적이고 더 민주적인

경제, 교육, 건강, 정치 등 사회의 거의 전 영역에서 엄청난 성 격차로 성평등 수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서,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조차 쉽지 않은 한국에서, 여성을 군대에 보냄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성평등이란 없다. 이 사회에서 남성만이 징집 대상이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남녀 불평등’이 아니라 21개월을 ‘잃어버린’ 남성들의 박탈감, 혹은 강요 당한 희생에 대한 분노다. 문제 해결의 출발은 21개월의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기를 거의 20년 째 반복하고 있는 군가산점제와 같은 망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케케묵은 헌재 판결을 들먹일 것도 없이 군가산점제는 공직에 뜻을 둔 극소수의 군필남성에게만 이득이 될 뿐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공직으로 나가지 않을 대부분의 군필남성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등 징병제도에서의 약자들)에게 차별적인 전시적 보상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우리를 억압하는 거대한 구조에 도전하는 것보다 내 옆의 개별 존재, 특히 나보다 약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 훨씬 쉽지만, 그런 인식과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질적 사회 병폐로 고착시킬 뿐이다. 그보다 징집 절차의 투명성 및 공정성을 확보하여 특권 계층의 병역비리를 근절하고, 방위산업 비리 및 부패를 엄단하여 국방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재고하는 것이 실질적 문제 해결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군대를 조금 더 인권 친화적인 공간, 상식이 통하는 공간, 폭력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어서 군인들의 생활의 질과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훨씬 타당하고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하는’ 인권의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모두에게 덜 폭력적이고, 덜 차별적이며, 덜 군사주의적이고, 더 민주적인 인권의 상향평준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한 데 힘 좀 그만 빼고 정말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말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이제는 명확해 질 때도 되지 않았나.

구럼비의 무덤 위에서 바다와 제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고? –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바다사랑 제주사랑 문예제’에 부쳐

|| 본 글은 2018-10-13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NIGAGARA HAWAII (니가가라 하와이).’

2016년 한 단체에서 주최한 ‘제1회 건국대통령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에 숨겨진 메시지였다. ‘To the Promised Land(약속의 땅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International leader, Seung Man Rhee (세계적인 지도자, 이승만) / Greatness, you strived for (위대하도다, 당신의 분투로) / A democratic state was your legacy (민주 국가라는 유산을 남겼으니)’로 시작하며 일견 공모전의 취지에 부합하는 이승만 찬양시인 듯 보여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각 행의 첫 글자를 따서 세로로 읽으면 ‘NIGAGARA HAWAII (니가가라 하와이)’라는 숨은 문장이 드러났다.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이후 이승만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하와이로 떠난 사실을 빗댄 풍자로 읽힐 수 있는 문장이었다. 비슷하게 첫 글자에 ‘한반도 분열 / 친일인사 고용 민족 반역자 / 한강 다리 폭파..’ 등의 문장이 숨어있었던 입상작 ‘우남찬가’와 함께 해당 작품은 시상식까지 모두 끝난 상태에서 뒤늦게 입상취소가 되는 해프닝을 만들어냈다.

 

사진출처: 대한민국 해군 페이스북

 

10일~14일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의 부대행사로 13일 토요일에 문예제가 열린다고 한다. 전국 초‧중학생 및 해당 연령대의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문예제의 주제는 ‘바다사랑 제주사랑’이다. 어떤 바다에 대한 사랑을 글에 담기를 원한 것일까. 아마도 다양한 해양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바다는 아닐 것이다. 구럼비를 부수고,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제주새뱅이를 죽이고 쫓아내어 그 무덤 위에 지어진 해군기지에서 벌어지는 잔치에서 감히 생명의 바다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떤 제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한 것일까. 아마 폭력에 저항하고 평화를 실현하고자 갈망하던 이들이 열심히 만들어오던 평화의 섬 제주는 아닐 것이다. 아직 치유되지 못한 4.3 국가폭력, 11년 째 이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국가폭력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강정에서 벌어지는 잔치에서 감히 평화의 제주를 말할 수는 없다. 결국 국제관함식을 통해 전 세계에 홍보하고자 하는 바다와 제주는 과정이야 어쨌든 해군기지가 자랑스럽게 들어선 바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태평양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제주다.

이번 국제관함식의 목표는 전 세계를 향해 제주가 국제적 군사기지로 거듭났음을 거하게 공표하는 데 있을 뿐이다. 11일 관함식에 참가해 해상사열을 받던 대통령이 “평화와 번영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게 강한 국방력이며, 그중에서도 해군력은 개방·통상 국가의 국력을 상징한다”고 말한 점에서도 그 취지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해군기지가 들어선 제주가 ‘평화의 거점’이 될 것이고, 국제관함식이 ‘세계의 평화·화합을 도모하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평화가 군사안보로 지켜질 것이고 군대는 자국 영토와 국민을 지킨다는 군사주의적 신화를 답습하고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군대의 본질은 ‘지키는 것’을 넘어서 ‘침략’에 있다. 국방을 책임진다는 한국군은 평화나 재건 따위의 이름으로, 하지만 사실은 ‘국익’과 정치적 이해관계 계산에 따라, 미국의 베트남 침략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미군기지에 맞서 삶의 터전과 생명, 평화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평택 대추리와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 자신들이 지켜야 할 대상이어야 마땅할 그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벌여왔는가. 평화는 결코 무기를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왔다.

 

사진출처: 제주의소리 (2018 해군 국제관함식 반대와 평화의 섬 제주 지키기 공동행동 제공)

 

제주는 거대한 국가폭력이 남긴 상흔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땅이자, 국가폭력에 대항하여 평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분투가 여전히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것은 그 노력과 생명들을 짓밟고 세워진 해군기지가 아니라 바로 그 국가폭력에 맞서는 평화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들을 견고한 차벽 뒤로 숨긴 채 학생‧어린이‧청소년들을 불러 모아 호국문예제가 열린다. 해군본부의 요청으로 제주도 교육청에서는 각 급 학교에 교직원과 학생 참가 협조 공문까지 보냈다고 하니, 가히 동원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평화를 지킨다는 바로 그 군대에 의해 깨어지고 짓밟힌 강정에서, 여전히 그 불법과 폭력에 저항하며 생명과 평화를 외치는 이들의 목을 무력으로 옥죈 채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그 자리에서 어떤 제주사랑과 어떤 바다사랑이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인가. 통렬하게 ‘니가가라 하와이’를 외치는 작품이 한 편쯤 나와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시국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이 결국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병원에 들이닥친 경검찰은, 기어이 시신을 빼앗아 부검을 하고야 말겠다는 기세다.  이미 부검에 반대한다고 명확히 입장을 표명한 유족을 두고 법원은 '유족과의 협의' 하에 부검을 하라고 영장을 발부하며 결국 사법정의 수호 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했다.  이 정부는 이미 억울하게 가신 분을 돌아가신 후에까지 능멸해서라도, 비록 그것이 눈 감고 아웅하는 일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사인이 물대포가 아니라고, 국가폭력이 아니라고 악다구니를 쓰고싶은 모양이다.  시민들이 바닥에서 밤을 새며 존엄한 생명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토록이나 저열하고 파렴치한 권력의 행태를 참을 수 없어서, 하지만 너무 멀리 있어서 그 자리에 단 하룻밤 함께 하는 것조차 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파서, 미친듯이 소식이 올라오는 소셜미디어 타임라인만 며칠째 멍하니 주시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어제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차곡차곡 쌓였던 갈 곳 없는 분노가 터져나왔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읊었는데도 끝이 없더라.


백남기 농민과 국가폭력,

최순실과 미르/k재단 비리,

독재 시대로 돌아간 것만 같은 정권, 

사드배치,

돈 10억엔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넘긴 정부,

7년 넘게 싸우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세계 최대 원전 밀집국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노후원전 수명을 2번째로 연장하겠다고 설치는 한전/한수원,

최근 지진으로 드러난 무능한 국가재난관리시스템,

2년 넘게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 미수습자들, 그리고 며칠 전 뜬 침몰 원인 규명 장치인 스테빌라이저가 아무도 모르게 이미 절단됐다는 기사,

회생불가능해 보이는 4대강과 세금 30조,

ktx 해고승무원과, 인천/김포공항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권력 찌라시로 전락한 주요 언론,

세금 수백억 써서 만들어놓고 한 번 달리지도 못하고 철거한다는 월미도 레일,

출구 없는 입시전쟁,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

OECD 국가 중 늘 뒤에서 선두를 다투는: 자살율; 임금을 포함해서 정치경제사회적 지위에 관한 젠더 격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역차별' 같은 주장이 성행할 수 있는 나라); 공공부문 국민 신뢰도; 부패지수; 소득재분배 정책; 유리 천장 지수; GDP 대비 복지예산 비율; 근로시간; 평균 수면시간; 국민행복지수; 아동 삶의 만족도 및 행복지수; 노조비율; 노인빈곤율/자살율...


읊다 읊다 지쳐서 잠들 이름.. 이 아니라 문제들이여..


당장 내 앞가림도 급급한 주제에, 바다 건너 불구경 하고있는 주제에 내가 분노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는 무력한 성찰을 해 보지만

치솟아오르는 분노와 답답하기만 한 가슴은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이런거 쓰면 잡혀가나.


시작과 끝(?)을/만 장식하는 블로깅

이 블로그의 첫 게시물은 2014년 8월 26일, 뉴욕으로 떠나오기 전 송별회들을 갈무리 한 글이다. 다시 보니 새삼 그립고 고마운 사람들.  이틀 뒤인 28일에 뉴욕에 도착, 지금이 2016년 9월이니 어느새 2년 하고도 한 달여가 지났다.  글은 써야 는다기에 어떻게든 글이 쌓이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야심차게 시작한 블로그인데 시작과 끝ㅡ일단은ㅡ만 장식하는 꼴이 되었다.  그다지 놀랍지는 않지만 부끄럽기는 하다.


2년이라는 시간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6개월의 인턴쉽을 마치고, 뉴욕 빠꿈이가 되기에 충분히 긴 기간이었다.  닥치면 다 한다는게 내 지론 중 하나지만, 막상 뒤돌아보니 어떻게 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한 시간들.  



View from the rooftop of the new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in the Meatpacking District, 16 Sep 2016



때로는 넘치게, 때로는 헐렁하게 채워진 하루 하루가 쌓여 시간은 착실하게 흘렀고 어느덧 내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은 한 챕터가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혹은 내 게으름의 결과로, 맞이하게 된 과도기.  아주 금방 뉴욕을 떠날 수도, 머무르게 될 수도 있는 애매한 시기.  Everything is up in the air.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혼재된 시간.  이 곳에서 새롭게 얻은 성취와 발전에 감사하며 내 앞에 펼쳐진 기회에 두근두근 하다가도 동시에 뼈저리게 깨닫고 만 나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라 급격히 가슴이 답답해지는 일이 반복되는 매일을 살아내고 있다.  새삼 깨달은 나의 부족함이 말하기/(듣기)/쓰기라는 건 조금 치명적이다.  온 지 겨우 2년인데, 한국말을 조리있게 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느낌적 느낌이 있고 쓰기 역시 지금 해 보니 못 하겠다.  띄어쓰기마저 너무 헷갈린다.  온 지 2년이나 됐는데, 그리고 그 기간동안 한 게 본격 영어로 말하고 듣고 글쓰기 훈련인데 자신감은 되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낮아진 것 같다.  특히 job application을 쓰며 현재 진행형으로 추락중이다.  사실 이게 극복(?)이 가능할지, 어떻게 해야 만족할 만큼 발전할 수 있을지 요즘 느낌 같아서는 감도 안 잡힌다.


Job search와 research proposal에 본격적(!)으로 올인하는 생활은 CSF 인턴쉽이 끝난 이후로 10일 째.  이렇게 날짜를 세어 보니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닌데, 나는 역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 (aka '잉여'의 상태)를 어지간히 못 견디는 것 같다.  뭐, 자금의 압박도 있고.  한국에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의도치 않은 배수진의 압박도 있고.


학교 도서관과 함께 내 주 서식지가 되고 있는 NYPL @5th av.  

10월 5일에 재개방하는 Rose Main Reading Room과 생각지도 못했던 book train도 보고 갈(?) 수 있게 생겼다.



한 가지 재미있는 깨달음은, research proposal을 쓰는데 막연하게 더 공부할 생각을 하면 끝없이 막막하다가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쓰기 시작하면 엄청 재미있다는거다.  이제야 겨우 '내 주제'의 윤곽이 어렴풋이 잡히는 것 같은, 미약하지만 매혹적인 감이 온다.  그렇다고 그 주제에 대해 제대로 뭘 안다는 건 아니다.  이건 이 쯤 되면 겸양이라는 미덕이 아니라 좀 문제인 것도 같다.


그래도 직업이든 공부든 지원 범위를 (아직까지는) 꽤나 협소하게 잡고 있다는 건 절박함이 덜해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강해져서일까.


너무 조급해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그래도 현실적 조건이 있으니 최대한 빨리 결정이 나도록 해야한다.  


  •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 아침에 일어나서 5분 명상하기.
  • 일단 방에서 나가기.
  • 마감 지키기. 인생의 목표다.
  • 매일 저녁 번역에 일정 시간을 할애하기.
  • 아주 짧게라도 일주일에 한 편 글 쓰기.
  • 꾸준히 운동하기.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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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 지향  (0) 2015.02.25

성취 지향

바다 건너 친구와 이런 저런 해우소 같은 대화를 주고 받다가 


문득 든 생각.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휴식 같은게 아니라


성취ㅡ 인걸까.


Achievement. Acknowledgement. Appreciation. "Promised" something.


요즘의 내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답일지도 모르겠다.


Strand Bookstore & Max Brenner | 스트랜드 책방 * 맥스 브레너 초콜릿 바

Strand Bookstore


1927년부터 뉴욕을 지켰다는 책방. 언제 가도 지하 1층, 지상 3층에 빽빽히 들어찬 손 때 묻은 중고책, 빳빳한 새 책, $1~2에 팔리는 낡은 책, 희귀한 고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관광객들도 많이 오지만 뉴요커들에게도 사랑받는 책방.

Union Square 맞은편에 있는 Whole Foods 옆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찾는 책이 있을 때 주로 아마존 중고책을 이용하지만 미리 검색을 해 보고 스트랜드에 있는게 확인되면 바로 들러서 사곤 하는데, 

책마다 차이는 있지만 늘 정가의 1/3 정도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이번에 산 책도 정가가 $22.95 인데 판매가가 $7.50. 대략 3만원 짜리 책을 8천원에 산 셈! 고마워요 스트랜드 :)



중고서점(새 책도 팔지만 중고서점으로 더 유명하므로)만이 갖는 또 하나의 사랑스러움, 책을 샀는데 이전에 그 책을 스쳐간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

재미있게도 처음 펼친 책 표지 뒤에서 약간은 누렇게 바랜 신문기사 스크랩이 팔랑, 떨어졌다. 책과 관련된 기사인데, 검색을 해 보니 2001년 11월 25일자 뉴욕타임즈다. 

http://www.nytimes.com/2001/11/25/books/the-enemy-of-my-enemy.html

전의 주인이 누군지, 괜히 고맙다.




chocolate by the bald man, Max Brenner 


책방을 나오다 맞은편에서 낯익은 가게를 발견.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블로그 등에서 많이 본 듯 하다. 

초콜릿 마시멜로 피자(!)로 유명세를 탄 Chocolate Bar 인데, 살짝 구경하러 들어가보니 꽤 넓은 레스토랑 한 켠에 초콜릿 상점도 자리하고 있다. 시식하라고 아몬드 생초콜릿을 주길래 먹어봤는데, 초콜릿 하나는 정말 맛있게 만드는 것 같다. 나름 초콜릿 매니아로서의 평.

아무리 그래도 초콜릿 마시멜로 피자는 영 관심이 가지 않지만.













The Frick Collection & Levain bakery | 프릭 컬렉션 & 르뱅 베이커리

The Frick Collection


사업가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 1849-1919)이 수집하여 소장했던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

1913년에 개관한 오래된 미술관이고, 원래 그의 집이었다고.

"Masterpieces from the Scottish National Gallery" 라는 주제로 열렸던 전시(Nov. 5, 2014 - Feb. 1, 2015)를 마무리하는 free night 특별 이벤트를 진행해서 다녀왔다.


전시된 미술품은 대부분이 유럽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상이고 도자기와 크고 작은 가구들도 있다. 전시품들도 다 매력적이었지만 그 크기나 인테리어에 있어서 경박하지 않은 화려함과 고풍스러움을 뽐내는 건물 자체와 가구들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 귀족의 집이 이랬을까. 딱 우리 엄마 스타일인데, 다음에 같이 올 기회가 있기를. 특히 복도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풍스럽고 묵직한 콘솔 테이블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미술관 전경. 이벤트가 깜깜한 겨울밤 6시에 시작해서 전경을 보지 못한 관계로 사진은 위키.

ⓒ "Henry C Frick House 001" by Gryffindor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Henry_C_Frick_House_001.JPG#mediaviewer/File:Henry_C_Frick_House_001.JPG


원래가 집이었던 공간인지라 전시실도 Garden court, Music room, Living hall, Library, Lawm, Dinning room.. 등의 이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곳이 중심부 즈음에 위치한 Garden court, 유일하게 사진촬영이 허가된 공간이다. 뉴욕의 다른 미술관들에 비해 관람 가이드라인이 엄격한 편인데, 사진촬영, 음식물 섭취(물 포함) 등이 안되는 건 물론이고 외투나 큰 가방은 무조건 맡겨야 한다(무료). 가구들도 죄다 전시품이다 보니 스치기라도 할까 우려되서 그런가 싶다. 10살 이하 어린이는 아예 출입 금지다. 


오늘은 이벤트를 하는 날이어서, 라이브 음악과 그림그리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종이와 연필, 지우개, 대고 그릴 판을 준비해 준 독특한 이벤트. Garden court 아무데고 털썩 주저앉아 예술혼을 일렁이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연필을 움직였다. 새삼 생각해보니 이런 그림 그리기는 고등학교 졸업 한 후 처음인 듯. 음악과 예술이 어우러져 반짝반짝 빛나는 밤이 되었다. 이 미술관은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찾을 것 같다.






Levain Bakery



맨하탄은 워낙 관광지라 이것 저것 유명한 가게가 많다. Levain 이라는 이 베이커리는 쿠키가 유명한 모양. 나도 이름은 들은 적 있었는데, 마침 미술관에 가기 위해 타야하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다는 친구들의 말에 함께 가게 되었다. 성인 남성 주먹 정도 크기의 아메리칸 쿠키가 $4 (종류는 4종 정도?), 레몬파운드케익 조각이 $3, 하드롤(?) 같은 빵이 $1. 쿠키는 겉은 바삭, 안은 촉촉&쫄깃한 식감이 우선 합격점. 초콜렛이나 월넛 등의 내용물도 실하다. 내가 잘 못 먹는 설탕 단 맛(?)이 아니라 초콜렛 단 맛(!)이어서 단 맛의 정도도 좋지만, 사이즈가 워낙 커서 한 번에 다 먹는 건 웬만해서는 힘들 듯. 우유나 커피도 필수. 레몬파운드는 레몬 향이 강해서 좋았지만, texture가 촉촉하기보다는 약간 퍼석한 느낌. 롤은 안 먹어봐서 모르겠고. 시험 기간에 당 떨어졌을 때 달달한 쿠키를 사러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이라인 그리고 첼시마켓 | The High Line & Chelsea Market

1. 하이라인 (The High Line)


1934년 화물 운송용으로 만들어져 사용되다가 1980년대 들어 철거될 위기에 놓였던 고가 철도가

'Friends of the High Line'이라는 그룹의 아이디어에 의해 2009년 시민을 위한 공중 정원으로 재탄생했다. 

갠스부르트 st. (Gansevoort Street)에서 출발하는 이 공중 정원은 지속적인 공사를 통해 2014년 9월에 34번가 (West 34th Street)까지 확장됨으로써 완성되었다.

*내용출처: http://www.thehighline.org/about


위 지도에 표시된 길에서 위쪽이 최근 완공된 34번가 (West 34th Street) 쪽 입구, 아래쪽이 하이라인의 출발지였던 갠스부르트 st. (Gansevoort Street) 쪽 입구. 34 St - Penn Station 역에서 내리면 34번가 쪽 입구까지 도보로 10~15분 정도 걸린다.


뒤돌아 찍어서 방향이 반대이지만 34번가에서 갠스부르트 st 방향으로 걸으면 오른쪽으로 허드슨 강이 흐른다.




앞서 걷는 두 친구들 :)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슬슬 걸으면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중간에 앉아서 놀고 먹고 하면 더 걸리겠지.

걷다가 2014년 초 철거가 결정되었던 서울의 아현 고가차도가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철거하기 전에 일반에 며칠인가 개방한다고 했었던 것도 같은데.

건축 쪽은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구조물의 부식 정도라던가, 예산 문제라던가, 주변 지형 관련 문제라던가 하는 복잡한 계산은 못 하겠지만, 왠지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2. 첼시마켓 (Chelsea Market)


하이라인의 끝인 갠스부르트 st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5~10분 정도 되돌아 걸어서 밑으로 내려가면 첼시마켓이 있다.



전신 스캔이 가능한 3D printer가 생겼다! 얼마 전에 왔을 땐 없었던 것 같은데, 새로 생긴 듯하다.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 (Banh Mi Num)를 파는 넘팡 (Num Pang) 에서 (맨하탄치고) 저렴하게 저녁 해결.

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내 입맛에는 Roasted Cauliflower 반미 강추. 물론 내가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친구들 의견을 들어보면 객관적으로도 맛있는 모양 :)







구글 맵은 아직 34번가 쪽 출입구 업데이트가 안 된 모양. 하이린...도 고쳐져야 할 것 같은데..
위키피디아에서는 업데이트 된 지도를 확인할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High_Line_(New_York_City)




뉴저지 킹스파 찜질방 | New Jersey King SPA

새해 맞이


목욕재계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친구의 아이디어로 뉴저지(New Jersey)에 있는 킹스파 찜질방에서 2015년을 맞았다.

정해진 시간마다 맨하탄 코리아타운 근처로 픽업차량이 오고, 찜질방 영수증이 있으면 돌아올 때도 이용 가능하다 (추가 금액 없음).


하지만 한국의 찜질방 가격을 생각하면 사실 가기 힘든 무시무시한 뉴욕의 물가.

홈페이지를 통해서 할인 쿠폰을 발급받아서 $10~$12 정도를 할인 받은 가격이 $32. 새벽 2시가 넘도록 머무르면 나올 때 $10.00의 overnight surcharge가 부과된다.

비싸지만.. 비싸지만.. 

첫 학기를 정말 열심히 살아냈으므로 우리는 자격이 있다며.



안에 들어가면 소금방, 다이아몬드방, 금(gold)방, 황토방, 허브방, 얼음방 등등이 있고,

찜질방의 핵심- 식당도 있다.

음식은 열쇠에 달린 전자식 카드(?)를 이용해서 사먹을 수 있고 찜질방을 나갈 때 결제를 하는 후불 방식이다.


찜질방에서는 역시 구운계란($?)과 식혜($6). 그리고 생과일 파파야주스($5). 특히 파파야주스는 과일이 담뿍 갈린 진득한 맛 :)


2015년 아침은 미역국정식(...$7? $8?)과 함께. 반 년 만에 처음 먹는 미역국, 정말 맛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쯤은 부릴만한 사치인 듯 :)